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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 : 16~24, 2025.02.27 (목)



이와 같이, 지금 너희가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요한복음16:22)

날이 좋아서 오랫만에 오래걸었습니다. 다음주에 시작되는 수요모임때문에 청년예배에 자주 가지 못할것 같아 집에서 걸어서 트리니티채플까지 다녀왔는데, 예전에 뛰어야 뻐근했던 다리가 이제 걸어서 뻐근해지는 것을 보고는 깊은 반성과 함께 소위 현타라는 것이 몰려왔습니다. 운동하지 않은 제 몸에 미안한 마음이 그리고 많이 걷고 뛰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저를 다시 채찍질 했습니다.


걷다가 보니 버클리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건물을 언제 올라섰는지 그리고 길은 어떻게 포장을 신속하게 했는지 미국이 느리다고 하지만, 버클리는 빠르게 변했습니다. 변하는 건 많은데 정체된것을 붙들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빠른 걸음을 재촉하고는 청년예배에 잘다녀왔습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구절은 예수님의 부재, 곧 십자가 사건과 부활과 승천이라는 큰 사건속에 제자들이 겪게될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안계신다는 것은 세상에 기쁨이 될것이고, 제자들에게 큰 근심을 하겠지만, 결국 그 근심도 기쁨으로 바뀔것이고 그 기쁨을 어느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똑같은 조건에 누구는 기쁘고 누구는 근심할 수 있습니다. 세상사가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삶은 늘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기쁜것은 잘 기억나지 않고 근심거리들이 삶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늘 삶에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대게 근심이라는 것은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그리 되면 어떻게 하지..."이런 생각은 개인의 성향 또는 분위기에 잘 휩싸일 수 있습니다.


아마 요한복음이 기록된 초대교회의 분위기속에 이런 근심이 존재했었던것 같습니다. 이에 파격적인 예수님 말씀을 전합니다. "근심에 싸여있지만, 다시볼때에는 기쁨에 쌓일 것이고, 어느누구도 그 기쁨을 빼앗을 수 없다"


여기서 다시 볼때는 예수님의 재림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보혜사 성령, 즉 조력자 되시는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순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막연하게 기뻐하십시오! 라며 서로를 격려하는 교회안에서 인사는 그 그건가 바로 성령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시니,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었고, 그 기쁨을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 하루 바람이 많이 불것같습니다. 겨울을 밀어내고 봄을 끌고 오는 바람인것 같습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근심을 날려버리고 기쁨의 바람으로 가득채워지기를 바랍니다.


묵상

근심의 조건보다, 기쁨의 조건이 우리에게 더 많습니다.


중보기도

  1. 튀르키예-그리스 성지순례를 준비하는데 단체항공을 위한 두자리가 비어있습니다. 신속히 사람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 지난 주 속회모임을 잘 모였습니다. 선교사 후원을 위한 협약도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무리없이 진행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3. 윤지은 전도사님이 눈 뒤 혈관이 확장되어서 혈관 축소 수술을 받으셔야합니다. 오늘 전문의사를 만나서 상담을 하는데 잘 진행되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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